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그림 앞에 서면, 마치 도시의 소음과 인간의 욕망, 본능의 리듬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광폭한 붓질과 겹겹이 뒤엉킨 색채, 일그러진 형상은 정돈된 미의식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드러낸다. 그의 회화는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시대의 불안을 한 화면에 새겨 넣은 시각적 언어였다.

이민자의 아들이 걸어온 길

190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난 드 쿠닝은 노동계층 가정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가난과 불안정이 그를 둘러쌌고, 12살에는 이미 상점 도제 일을 하며 생계를 도왔다. 그러나 그는 로테르담 미술학교에 야간으로 다니며 디자인과 상업미술을 배우게 되었고, 이때부터 도시의 혼잡함, 거리의 생동감, 산업화의 속도 같은 경험들이 그의 시각 언어에 스며들었다.
1926년 그는 밀항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뉴욕은 당시 이민자와 빈민, 새로운 예술 운동이 뒤섞인 거대한 용광로였다. 드 쿠닝은 인부, 간판화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낮에는 벽을 칠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렸다. 예술이 사치품이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생존 방식처럼 느껴졌던 이 시절은 그가 끝내 작품 속에서 인간의 본능적 에너지를 놓치지 않게 한 중요한 토대였다.
대표작과 그 의미
〈Woman I, 1950–52>는 드 쿠닝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열쇠 같은 작품이다. 일그러진 여성 형상, 강렬한 붓질, 원시적 색채는 단순히 여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욕망, 공포, 매혹이 뒤섞인 인간 본성을 상징한다. 제작 과정에서 수십 차례 캔버스를 덧칠하고 지우는 반복을 거쳤는데, 그 자체가 그의 예술 철학을 보여준다. 그림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변화와 혼돈의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다.

〈Excavation, 1950〉은 거대한 캔버스에 파편화된 형상과 색채가 마치 땅을 파헤치듯 뒤엉켜 있다. 이 작품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대상을 받으며 그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확립시켰다. 발굴이라는 제목처럼 인간 심리의 심층부를 파고드는 듯한 화면 구성은 전후 시대의 불안과 욕망을 시각화한 결과였다.

도시와 인간, 그리고 예술 철학
드 쿠닝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혼돈의 에너지는 그가 살아온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가난과 이민, 뉴욕이라는 급격히 변하는 도시 공간은 그에게 안정된 질서보다는 불확실성과 속도, 감각의 과잉을 각인시켰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형태가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며, 추상과 구상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그는 인간의 감정이 본질적으로 혼돈 속에 존재한다고 믿었고, 예술은 그 혼돈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그림은 도시처럼 계획된 구조가 없다. 그냥 만들어지고, 덧칠되고, 때로는 지워진다. 삶이 그렇듯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의 붓질은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자유롭고, 색채는 충돌하면서도 묘한 균형을 만들어낸다.
유산과 영향
드 쿠닝은 잭슨 폴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를 20세기 미국 미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지만, 폴록이 완전한 추상의 영역으로 갔다면 드 쿠닝은 끝내 인간 형상, 특히 여성이라는 모티프를 붙잡고 있었다. 이는 그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후 신표현주의 화가들, 예를 들어 줄리안 슈나벨이나 안젤름 키퍼 같은 작가들이 인간의 감정과 형상을 다시 회화에 불러들이는 데 드 쿠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윌렘 드 쿠닝의 예술은 도시의 혼잡, 이민자의 삶, 인간 본성의 불안정성을 한 화면에 압축한 시각적 드라마였다. 그는 삶을 질서 있게 정리하기보다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진실성을 붙잡으려 했고, 그 결과 그의 그림은 오늘날에도 생생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우리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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