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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3] 미술, 정치의 매개 (22~32)

Celine Kang 2025. 4. 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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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Napoleon Crossing the Saint-Bernard

  • 통치자의 초상을 가장 조직적으로 제작한 곳은 로마
  • 회화보다도 조각, 주화, 메달의 형태로 황제의 이미지를 제작
  • 특히 기마상을 통해 권위와 용맹함을 나타내며 이상적인 통치자의 이미지 메이킹
  • 나폴레옹은 당대 최고의 화가 다비드를 공식 화가로 임명하고 황실의 행사를 그리게 함
  • 나폴레옹은 잠시 포즈를 취하기는 했으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지 얼마나 닮았느냐는 상관하지 않았음
  • 다비드는 결국 제자를 시켜 포즈를 취하게 해 나머지를 완성시킴
  • 전진을 향한 제스처는 미래를 향하는 모습이기도 함
  • 그의 이름 보나파르트와 함께 고대 장군 한니발과 샤를마뉴 대제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영웅적인 인물들과 동일시함
  • 사실 나폴레옹은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감
  • 통치자 초상을 위해 최고의 아티스트를 통해 영웅적인 모습을 선전하고자 하는 시도는 현대에는 사라짐
  • 그들은 대중매체에 보이게 되면서 경외감도 없어지며, 오히려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가길 원함

그림만 봤을 때 나폴레옹은 거의 신화의 주인공같기도 하다 그의 눈빛에서는 엄청난 기세와 카리스마, 리더쉽이 느껴진다 이 시기에는 시민들과 통치자가 직접 마주칠 일이 없으니, 이런 그림을 통해서 항상 사람들에게 신비롭고 대단한 위인처럼 보여야 할 터이다. 현대 정치인들이 선거 전 국밥을 먹는 모습, 시장에 가서 만두를 먹는 모습, 그리고 이 나폴레옹 초상 모두 나에게는 작위적인 느낌을 불러온다

023 Audience Hall of Darius and Xerxes

  • 1970년대까지 이란은 중동의 파리로도 불렸다. 하지만 팔레비 정권이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집권해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변모했다
  • 이란의 현재 자리에 가장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고 제국으로 있던 나라가 페르시아 제국이다
  • 페르시아는 다리우스-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때 세 대륙에 걸쳐 영토를 확장하는 전성기를 보냄
  • 페르시아는 호전적인 나라가 아니었고 질서있고 평화로웠다
  • 페르세폴리스는 다리우스가 지은 궁전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그는 알현실의 완성만을 보고 죽었다
  • 인상적인 곳은 알현실로 향하는 72개의 기둥, 기둥 각각에는 각 나라에서 온 사신들의 행렬 조각 모습이 있다
  • 이후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함락하고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웠으나 아직 소실되지는 않았음

한때 세계의 거의 절반을 통치하며 세계의 수도였던 이 곳의 영광이 담겨 있는 곳이다. 궁은 춘분 축제 이외에는 비어있다고 이 책에 써져 있는데, 그 장엄함에 비해 너무 사용처가 적어 아쉬운 것 같다. 그 존재 자체로 상징적인 역할을 했으니 그걸로 충분한 것 같기도 하고. 이란은 이란혁명 이후 참 묘하게 흘러가는 나라인 것 같다. 자유를 외치던 그들이 현재 자기 나라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반미 국가로도 낙인찍혀 앞으로 외교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감도 안 온다. 시대는 변해가고 있다. 이란의 젊은이들은 예전처럼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선동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심각한 경제 위기가 지속되며 불투명한 미래가 계속된다면 불복종 운동은 더 심해질 수 있다.

024 Lamassu

  • 고대 메소포타미아 국가 중 ‘아시리아’는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 사르곤 2세는 샤루킨 왕궁을 지었다
  • 통치자가 신과 신하의 중간 역할을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와 더불어 홍수 방지를 위해 높이 지음
  • 문 입구 양쪽에 라마수라는 반인반수 동물상을 세움
  • 궁궐에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물리치는 수호신 역할, 4.26 미터
  • 왕궁 안의 조각 중 왕의 사자 사냥 장면은 아시리아가 세계의 중심이며 용감한 왕의 상징적인 모습을 나타냄
  • 이슈타르(전쟁의 여신) 문 : 푸른색의 벽돌로 뒤덮여 화려한 모습, 하나하나 빚어 유약을 발라 구운 후 벽에 붙여짐 , 60마리의 사자 부조가 연속적으로 장식됨

라마수의 모습은 수수께끼의 괴물 스핑크스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그 시대 왕궁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압도할 수 있는 첫인상을 느끼게 해줬을 것 같다

그리고 생김새는 많이 다르지만 우리나라 궁 앞에 위치한 해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유럽 왕궁의 화려하고 우아한 건축 그리고 상징물과는 또 다른 중동의 기하학적이고 정형화된, 비례적인 작품들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025 Funerary Temple of Hatshepsut

  • 고대 이집트 역사에 여러명의 여성 파라오가 있었다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강력한 권력의 여성 파라오는 하트셉수트였다
  • 이집트 왕실에서는 그 당시 근친혼이 흔했다 왕이 후궁과 낳은 왕자가 너무 어려 20년간 섭정을 했다
  • 파라오가 갖추는 복장이 남성 파라오와 동일한 모습이다
  • 하트셉수트 통치 시절은 타 지역과의 교역이 활발하고 번영과 평화를 누린 기간 가장 큰 프로젝트는 장제전을 짓는 것
  • 파라오의 묘가 도굴되지 않게 시신은 암석 깊숙한 곳에 매장하고 대신 장제전을 짓고 의식을 치뤘다
  • 수평적 건물과 짧은 수직적 열주의 조화가 이루어진 건축물
  • 건축가이자 대신인 세넨무트의 역할이 컸음
  • 통치자의 허영심때문에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대내외에 상징하기 위함
  • 그녀 이후 투트모세가 하트셉수트의 기록을 지우고 이미지를 파괴

사막 한 가운데 세운 장제원의 모습은 내가 가고싶은 곳 중 하나인 ‘아만기리’를 연상케 했다

대자연속에 당당히 위치한 두 건축물은 보기만 해도 차분해지고 경건해지는 느낌까지 든다

개인적으로 사막 투어는 모로코 사하라 사막과 베가스 관광중 경험했던 모하비 사막밖에 없지만, 그곳들은 모래사막이고 장제원이 있는 이 곳은 협곡? 같은 느낌이 들어 이집트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026 Akhenaten

  • 고대 이집트의 평온함이 내세에서도 지속되기를 믿어 그들은 무덤을 견고하고 화려하게 지음
  • 파라오는 신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졌고 죽으면 신이 되는 존재
  • 파라오 아크나톤은 태어날 때부터 근친혼에 의한 유전병때문에 특이한 골격을 가졌음
  • 그는 평온한 이집트에 과격한 정치와 종교개혁을 단행함
  • 다신교를 부정하고 기존에 가장 강력했던 태양신 ‘아몬 레’ 대신 ‘아텐’을 유일한 신으로 섬김
  • 인물과 동물의 혼합 형태로 표현되던 신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빛으로 바뀜
  • 수도도 테베에서 아마르나라는 곳으로 천도함
  • 아마르나 양식은 유연한 곡선과 자연스럽고 생동감있는 움직임을 뜻함
  • 하지만 아크나톤이 죽자 다시 수도가 옮겨지고 그의 흔적이 사라졌다
  • 네페르티티는 아크나톤의 왕비이자 투탕카멘의 이모였다 그 조각은 목이 길고 비례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아마르나 양식의 섬세한 곡선과 형식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

권력이 집중되면 고인 물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을 혁신하려는 현명한 통치자가 등장한다. 아크나톤의 천도 계획은 조선의 정조 시기, 그리고 현대에 와서도 몇번 시도되었던 것처럼 그간의 정치가 고착화되었는지 증명하는 바이다. 신관의 권력이 강해져 숭배하던 신까지 바꿨으니 그는 종교적 권력과 왕권을 일치시키려 노력했던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이집트 역사에 대해서도 깊게 공부해보면 좋을 것이다

027 Louis Philippe as Garpantua - Honore Daumier

  • 풍자화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왔다. 폼페이 유적에서도 풍자화가 발견되고 중세에도 이어졌다
  • 하지만 신문과 잡지같은 미디어가 보급되는 시기 확고해졌다
  • 프랑스 최고의 풍자화 작가는 오노레 도미에, 약 4000점의 석판화를 통해 정치를 비판
  • 1830년 혁명 이후 왕위에 오른 루이 필리프는 언론을 억압하고, 방만한 왕실 경영을 했다
  • <가르강튀아 같은 필리프>에서는 필리프를 서민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소설 주인공인 거인 왕 가르강튀아를 왕으로 묘사했다
  • 결국 이 석판화는 실리지 못하고 도미에는 재판에 회부되어, 감옥형과 벌금을 선고했다
  • 이후 왕이나 권위에 대한 언론의 공격은 투옥에 처할 수 있다는 법이 제정됨
  • 검열이 심해지자 그느 정치 풍자보다는 사회적 문화적 풍자화를 그림
  • 하지만 생전 미술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현재 미술사에서 독자적인 표현력으로 인정을 받음

그림의 왕은 백성들에게 착취한 금화를 먹어치우고, 의자 밑으로는 각종 훈화와 임명장을 배설하고 있다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그 배설물을 가져가고 있다 처음 그림을 봤을 때는 데생인 줄 알았는데 석판화라니 라인만으로 명암을 나타내고 해학적인 요소를 담아낸 도미에의 능력이 대단하다

028 Statue of Lenin

  • 1917년 레닌이 스위스 유배에서 돌아와 노동자와 농민 앞에서 연설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
  • 왼손으론 옷깃을 잡고 오른손은 마치 미래를 제시하는 듯한 자세,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조각과 흡사
  • 레닌은 개인 숭배에 비판적이었으나 문맹이 절반 이상이었던 당시 동상이나 기념물은 사회주의 혁명에 필요하다고 생각함
  • 마르크스, 엥겔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쇼팽 등의 명단을 제시
  • 핀란드역의 레닌상은 그의 사후인 1926년 처음으로 기념동상이 제작된 것
  • 스탈린은 레닌 숭배를 조장하면서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를 고용해 자신의 조각상도 제작
  • 1956년 소련 공산당이 개인숭배를 금지함
  • 1960년대 중국은 마오쩌둥의 기념 동상을 제작하고, 북한은 이런 흐름을 타 1972년 김일성 동상을 세움 이 동상은 현재 세워진 인물 동상으로는 가장 높은 천동상
  • 흐루시초프 시대에 스탈린 동상은 파괴됨, 핀란드역의 레닌 동상도 구멍이 뚫림
  • 현대 서양에서는 개인 숭배 자체에 회의를 느껴, 위인의 이름을 건축물에 붙여 기념

공산주의는 새로운 권력 아이콘이라는 수단을 통해 대중과 노동층을 교화시키고 당에 충성하는 기계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상징물로 이데올로기를 표면적으로 강압하고 전체주의적인 성격으로 변모한다. 신격화가 이뤄지면서 과거사가 묻혀버리거나 과오가 덮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이에 대한 반발로 업적보다는 과오만 지나치게 부각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역사적 인물의 행적 자체가 보여주는 시대상과 입체적인 평가를 방해한다.

029 만국박람회

  • 1930년대 독일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 이탈리아는 무솔리니가, 소련은 스탈린이 정권을 잡았다
  • 이 가운데 파리의 만국박람회는 ‘평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나 유럽 열강의 문화 정치판이 되었다
  • 소련관과 독일관이 대치되게 배치되었음
  • 소련관은 공장 노동자와 집단농장 소녀가 전진하는 강철 조각, 이 조각은 독일관에 침범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독일관 조각가는 생각함
  • 독일관은 소련의 전진을 결연히 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세움, 건물 꼭대기에는 독수리가 소련관을 내려다보고 있었음
  • 스페인관에서는 정치적 분노와 항거가 표현됨. 한달 전 게르니카에 히틀러의 독일 비행기가 공중폭격을 퍼부음
  •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흑과 백으로 제작되어 강렬하게 대량 학살을 고발한다
  • 만국박람회 2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엑스포 자체는 당대에 가장 큰 행사로 칭송받았으나, 실상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예고편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는 노동자 동상과 세계를 내려다보는 독수리 동상이 만들어지며, 소련과 나치 독일은 세계사 통틀어 몇 없는 최악의 라이벌이 될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030 독립문과 개선문

  • 우리나라 독립문은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서재필이 주도하던 독립협회에서 만든 건축물
  • 파리의 개선문의 외형과 같게 했다.
  • 로마는 약 BC 27부터 약 500년간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다
  • 예술적 감각은 그리스인보다 떨어진다고 여겨졌지만, 건축만큼은 창의력을 인정받았다
  • 로마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진 개선문은 약 60개 이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세개만 있음
  • 근대기에 들어와 로마제국에 대한 동경으로 나폴레옹은 ‘에트왈 개선문’을 파리에 세워 기념함
  • 에트왈 개선문은 프랑스의 모든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국가적 상징으로 자리 잡음
  • 1989년 파리의 신도시 라데팡스에 세워진 신개선문 ‘La Grande Arche’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롭게 발전시킴

우리나라 독립문은 청일전쟁 이후 영은문을 허물고 만든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던 건출물이라 일제강점기 시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19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는 주권을 잃은 나라였으니 말이다. 더불어 세계 각지의 개선문에 더 찾아보았는데, 오마이갓 세계에서 가장 큰 개선문이 평양에 있다고 한다. 그들의 사상을 상징적은 조형물로 선전해야 했으니 예술가의 고찰과는 전혀 관계없는 ‘상징’물일 뿐이겠지

031 Jewish Museum Berlin - Daniel Lbeskind

  • 제2차 세계대전 중 학살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으로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스타덤에 올랐다
  • 건물 외벽의 열개의 지그재그 번개와 같은 형태는 다윗왕을 상징하는 별이 깨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건물 외부는 대각선들이 교차하거나 선의 형태라 찢겨진 피부처럼 느껴진다
  •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있고 선 형태의 창문에서 오는 광선들은 매우 암묵적이다
  • 전시품이 하나도 없는 방도 있어 관람자가 부재, 허공, 망각을 느끼게 한다
  • 유대인 말살과 부재를 인정해야만 유럽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봄
  • 유대인과 베를린 또는 유대인과 유럽의 관계를 선과 선으로 비유했다

독일은 전쟁 범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역사 교육을 통해 과거를 직시하며 유럽 내 신뢰를 회복했다. 반면 일본은 전쟁 책임에 대한 모호한 태도와 역사 왜곡 논란으로 주변국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에는 ‘유대인박물관’같은 건축물이 있나? 일본에는 독일의 유대인박물관이나 한국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처럼 국가가 저지른 전쟁 범죄와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는 박물관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관광은 제일 많이들 가는 나라다. 현재의 문화적 유산은 누리되 과거를 잊고 사는 한국인이 되지는 말자고 한번 더 다짐하게 된다.

032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 Frank Gaylord

  • 그간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했다.
  • 하지만 월남전 참전 용사 기념비가 세워지면서 한국전쟁 기념비도 세워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났다
  • 이 조형물은 19명의 순찰을 나온 군인들이 비옷을 입고 전진하는 모습이다
  • 군인의 표정은 종군 사진작가 덩컨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
  • 조각상 앞에는 ‘기억의 연못’,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세겨져 있다
  • 월남전 기념비는 두 개의 검은 화강석이 v자 형태로 마주치는 단순한 추상 형태
  • 승리보다는 죽은 용사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평가됨
  • 6.25 기념물은 뛰어난 사실성을 토대로 영웅적인 전투 행위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군인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중요한 조형물로 평가된다

6.25 전쟁은 냉전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면서, 두 이데올로기가 충돌해 물리적으로 부딪힌 사건이다. 하지만 이후 미국은 그들의 역할은 축소하고 소련과 북한의 책임만을 강조해왔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전쟁에서 희생된 모든 죽음을 기릴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기록되어야 하며, 강대국의 역할 또한 제대로 조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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