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Uffizi Gallery
-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술품 수집가
- 특히 로렌초가 어린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높이 사 고대 미술품 컬렉션 공부를 후원
- 후원동기는 당시 고리 대금업을 하는 오명을 씻고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 한 것
- 현대의 록펠러 가문은 악덕 자본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단을 세움
- 록펠러 2세 부인 애비는 현대미술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함
- 뉴욕에 metropolitan 미술관이 있었지만 1920년에는 현대미술이 볼셰비키라는 논란이 있었음
- 애비 록펠러는 부유한 친구들을 모아 1929 MoMA를 창립함
- 앨프리드 바는 당시 27세 애비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여러 분야의 컬렉션을 시작
- 애비 록펠러의 둘째 아들 넬슨 록펠러는 미술관을 정부의 대외 문화 통로로 만들어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림
모마는 세계적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피카소, 달리, 몬드리안, 폴록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넬슨 록펠러가 모마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점은 예술의 순수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었다. 특히 냉전 시대에 반공 이념을 반영한 전시와 컬렉션 구성이 논란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마는 정치적 도구가 아닌 예술의 장으로 남았다.
034 Our Bread - Diego Rivera
- 1910년대 멕시코에서의 벽화운동은 멕시코의 전통과 역사,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수단
- 디에고 리베라는 프랑스에 유학해 유럽의 입체주의에 영향을 받은 양식이 아닌 멕시코의 고대 미술과 민속 미술을 복합한 사실주의 양식으로 벽화를 그림
- 멕시코의 선인장 즙을 이용해 벽화를 그리려 했으나, 실패하고 프레스코 방식으로 바꿈
- 멕시코의 역사와 혁명, 사회주의 정신을 반영한 주제
- 사회주의 협동작업을 시작했으나 우익 정권이 들어서자 해체됨
- 1930년대는 미국의 의뢰가 빗발쳐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산업 문명을 벽화에 담음
- 애비 록펠러의 의뢰를 받아 록펠러 센터에 벽화를 그렸으나, 레닌의 초상을 발견한 록펠러는 그림을 모두 지우고 건물 출입을 금지시킴
- 1934년 멕시코로 돌아온 리베라는 부르주아의 화가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몰락함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는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구성이 인상적이며, 멕시코 혁명과 노동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내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역사와 민중의 투쟁을 예술로 승화시킨 점에서 깊은 감동을 준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미국에서 사회주의적 사상을 담은 벽화를 그렸다는 점은 아쉬움과 동시에 그의 용기를 돋보이게 한다. 강한 신념을 지키며 예술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표현한 대담함이 그의 작품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
035 Vertumnus - Giuseppe Arcimboldo
- 아르침볼도는 1560년대 합스부르크가의 부름을 받고 비엔나로 가 궁정화가가 됨
- 초상을 그리는 것 이외에도 궁정 미술감독과 같은 역할을 함
- 그가 과일, 채소, 꽃을 사용한 복합 초상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563년경부터
- 순수한 정물화로 시작해 얼굴의 특징이 나타나게 수정함
- 정물들은 왕실을 찬양하거나 정치적 이상을 상징하는 우의적 의미를 가짐
- 그의 그림은 당대 사람들이 어떤 과일이나 채소를 재배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이후 20세기 다다이스트와 초현실주의 미술 운도의 선구자로 평가됨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작품은 기발하고 재미있다. 과일, 꽃, 책 같은 사물들을 조합해 사람 얼굴을 만들었는데, 보고 있으면 신기하면서도 놀랍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 개성 강한 캐릭터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생각과 철학까지 담아낸 점이 대단하고, 오래전 그림인데도 지금 봐도 참신하게 느껴진다.
036 호화 기도서 - 랭부르 형제
- 중세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미술품은 채식필사본 (글을 펜으로 직접 쓰고 장식한 책)
- 가장 인기 있던 채식필사본 종류는 하루에 여러 번 시간 맞추어 기도할 때 쓰던 기도서
- 베리공작은 농민에게 혹독한 세금을 물어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부자였다
- 랭부르 형제가 베리 공작을 위해 제작한 기도서에는 열두달에 적합한 귀족의 모습이 나타난다
- 베리 공의 주문으로 그려져 농민이 귀족들 덕분에 즐겁게 일하는 모습으로 그려짐
- 농민의 일상을 종교적인 기도서에 그린것이 프랑스 미술에 뒤늦게 르네상스가 오고있음을 나타내는 작품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예술적 특징을 담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생활뿐만 아니라 당시 농민들의 일상까지 세밀하게 담아낸 점이 흥미롭다.한 장 한 장이 마치 미니어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 있어, 책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시대를 엿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037 헨리 8세의 신붓감 - 한스 홀바인
- 인상주의 이전 초상화는 실물을 이상화해 그렸다
- 한스 홀바인은 인물의 약점을 적절하고 훌륭하게 보완해 그린 초상화가
- 토머스 모어의 초상화를 그린 계기로 헨리 8세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 헨리 8세는 여섯 번이나 결혼을 했다.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 탐욕스러운 인물
- 덴마크의 공주 크리스티나를 매력적으로 그려내 헨리 8세는 결혼을 희망했지만 그녀는 거절함
- 홀바인은 또 다른 여인인 평범한 외모의 앤을 화려하고 아름다운 보석으로 치장하는 모습으로 그렸으나, 실제 모습을 본 헨리 8세는 이혼함
홀바인의 작품은 단순한 인물화가 아니라 시대적 분위기와 권력의 본질까지 반영하는 역사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의 그림을 보면 단순히 인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럽의 정치와 사회를 엿보는 느낌이 든다. 특히 헨리 8세의 초상화는 오늘날의 정치인 프로필 사진처럼 권력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홍보 수단 같기도 하다. 동시에, 세밀한 묘사 덕분에 헨리 8세의 화려한 의상과 보석이 얼마나 사치를 상징했는지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038 Bacchanal - Tiziano Vecellio
- 바카날이란 바커스(오니소스)의 신의 축제를 의미
- 명확함과 이성으로 상징되는 아폴로와 대조되는 쾌락적인 바커스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철학자가 기록한 것을 보고 15세기 이탈리아 군주 알폰소는 그림의 기록을 고증해 소장하고 싶어했다
- 그림은 떠들썩한 야외의 술자리를 묘사했고 율동감 넘치고 풍요롭게 그려졌다
- 알폰소는 교황 율리우스와의 사이가 호전되자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보였다
티지아노의 바카날을 보고 있으면 활기 넘치는 축제의 한 장면을 엿보는 듯하다. 라스베이거스의 뷔페 ‘바카날’에 갔던 기억이 떠오르는데, 그 이름이 바로 이 작품과 고대 로마의 술과 향락의 축제에서 유래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어 신기했다. 그림을 보니 맛있는 음식과 넘치는 와인, 흥겨운 분위기가 진짜 바카날 축제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039 다윗과 사울 - Jean Pucelle
- 성경이나 기도서가 주종인 채식필사본은 수돗들이 제작했고, 소유도 성직자만 가능했다
- 아직 유럽에서 종이가 만들어지지 않아 양피지로 제작
- 필사본의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한 의미는 사치라기보다는 신을 숭배하는 의미
- 13세기부터는 채식필사본이 장인의 공방에서도 제작되었고, 문맹도 줄어들어 개인용 채식필사본은 중요한 소유물 중 하나가 되었다
- 장 퓌셀은 중세의 평면성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원근법을 적용했다
- 글 가장자리 기이한 생명체들(담쟁이덩굴, 꽃, 원숭이 등)을 그려 종교적인 내용과 관계없는 그림을 넣기 시작함
- 종교적인 장면은 표준화된 규범을 따르되, 가장자리의 장식 그림에서는 화가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음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지만,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세부 묘사는 당시 유럽 귀족 사회의 세련된 취향과 예술적 감각을 반영하고 있다.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적인 요소를 강조한 표현 방식이 돋보인다.
040 Madonna of Chancellor Rolin - Jan Van Eyck
- 중세와 르네상스에는 봉헌자의 초상이 같이 들어감. 초기에는 종교적 장면과 분리되지만, 15세기에 이르러 성인들과 같이 등장한다
- 봉헌자 롤랭이 같은 선상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대등하게 표현해 대단한 위상을 나타낸다
- 롤랭처럼 성당에 많은 돈을 기부할 때만 가능
- 작은 그림이지만 디테일이 많이 담겨있음. 창문 밖 풍경 등
- 창밖의 두 인물은 화가와 조수라는 설도 있음. 그들은 세속과 천국의 경계에 있다
세속 권력과 종교적 상징을 한 화면에 배치하여 새로운 구도를 시도한 작품이다. 세밀하게 묘사된 인물과 풍경은 마치 실제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빛의 표현과 원근법이 정교하게 사용되어 성모와 총리 롤랭의 존재감을 더욱 극대화하며,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미술의 변화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041 카를로스 4세의 가족 - Francisco Goya
- 그림 주문자들이 대금을 즉시 지불하지 않아 미술가들이 곤경에 빠질 때도 많았다
- 17세기 교회보다 왕의 권력이 높아지면서 전속 미술가들을 원했다
- 전속 미술가가 되는 것은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명예로웠지만, 부패한 왕족을 미화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음
- 네델란드에서는 그림 거래를 도와주는 화상을 만날 수 있었음. 그리하여 화가들은 주문자의 취향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분업화가 이루어짐
- 화가들은 미완성 스케치를 샘플로 보여주고 가격 흥정이 끝나면 작업을 완성하기도 함
고야의 그림은 왕실 가족에 대한 경멸이 여러 요소에서 드러난다. 인물들의 얼굴은 귀족적인 위엄이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고, 마치 가면을 쓴 듯 어색하고 둔한 표정을 하고 있다. 왕인 카를로스 4세 역시 위엄 있는 군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고, 주변 인물들에 비해 존재감이 희미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그림 속에서 고야가 자신을 배경 어둠 속에 배치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042 The tree of life - Seraphine Louis
- 나이브 아트(naive art)란 세라핀 루이처럼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의 작품을 뜻한다
- 그는 부모를 여의고 수녀원과 중산층 가정에서 잡일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 이들 그림의 특징은 원근법을 무시하며 평면적이며 강렬한 색채에 집착하는 것
- 정밀하게 그린 정물은 살아있어보이기도 하며 솔직하고 순수하게 표현되었다
- 빌헬름 우데라는 화상은 세라핀, 피카소, 앙리 루소 등을 후원했다
- 앙리 루소는 중년에 화가가 되어 동물원, 식물원, 이국적인 문화에서 영감을 얻음
- 특히 ‘잠자는 집시’ 그림은 재능과 상상력이 무한한 느낌을 주어 예술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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