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길리엄(Sam Gilliam)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캔버스들이 더는 평면 위에 고정돼 있지 않다. 색이 폭발하듯 번져 있는 캔버스들이 천장과 벽에서 드리워져, 관람객은 그 사이를 거닐며 색채와 공간이 만든 파도 같은 울림을 경험한다. 그는 20세기 후반 추상표현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회화의 형식을 완전히 새롭게 재정의한 인물이다.

성장 배경과 예술가로서의 길

샘 길리엄은 1933년 미국 미시시피주 투펄로에서 태어나 켄터키 루이빌에서 성장했다. 루이빌 대학교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60년대 워싱턴 D.C.로 이주해 ‘워싱턴 컬러 스쿨(Washington Color School)’ 작가들과 교류하며 추상회화에 몰입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색면 추상을 답습하지 않고, 캔버스와 색채, 공간의 관계를 새롭게 실험하는 독창적 언어를 개발했다.
대표작과 그 의미
〈Drape Paintings〉 시리즈(1965~)는 샘 길리엄의 예술 세계를 상징하는 작업이다. 캔버스를 나무 프레임에서 떼어내 천장이나 벽에 걸어두거나 바닥에 펼치면서 회화가 더는 평면에 갇히지 않도록 했다. 물감을 붓고 접고 펼치는 과정에서 생긴 우연한 얼룩과 주름은 작품마다 다른 리듬과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Carousel Change〉(1970)는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작으로, 거대한 캔버스들이 공중에 걸려 관람객이 그 아래를 걸어 다니며 색채의 흐름을 직접 체험하도록 설계됐다. 이 작품은 회화가 더는 ‘보는 대상’이 아니라 ‘공간을 경험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형식의 해방과 혁신
샘 길리엄의 가장 큰 공헌은 캔버스를 전통적 프레임에서 해방시킨 데 있다. 그는 추상표현주의의 격렬한 붓질 대신 얼룩과 염색, 중력에 의한 색의 번짐을 활용해 우연성과 물질성을 강조했다. 그 결과 그의 회화는 조각과 설치미술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며, 회화·조각·건축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예술 철학과 영향
샘 길리엄은 “내 작업은 계획된 구도보다 재료와 우연, 공간이 만들어내는 대화를 따른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작품은 1960~70년대 미국의 추상미술을 새롭게 확장했으며, 특히 흑인 예술가로서 주류 미술계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드문 사례였다.
그의 실험정신은 이후 설치미술, 환경미술, 몰입형 전시 등 동시대 미술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그의 드레이프 페인팅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모마(MoMA),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현대미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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