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Cartier)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단순히 보석 브랜드를 넘어 ‘럭셔리’라는 단어를 상징하는 브랜드죠. 그런데 까르띠에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걸까요? 왕실의 공식 보석상으로 시작해 세기를 초월하며 우아함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까르띠에에는 그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반짝이는 보석을 넘어서, 사랑과 우정, 자유와 같은 깊은 가치를 담아내고, 그것을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브랜드이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오늘, 까르띠에가 어떻게 주얼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왜 이 브랜드에 열광하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해요. 준비되셨나요? 😊
까르띠에(Cartier)란?
까르띠에(Cartier)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급 주얼리 브랜드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주얼리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이 브랜드는 창립 초기부터 왕실과 유명인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그 우아하고 정교한 디자인으로 럭셔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까르띠에는 현재 LVMH, 케링과 함께 럭셔리 시장을 이끄는 주요 브랜드 중 하나로, 시계와 주얼리 분야에서 큰 명성을 쌓고 있습니다.
브랜드 창업 스토리
까르띠에의 이야기는 1847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됩니다. 설립자는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Louis-François Cartier)로, 그는 작은 워크숍에서 브랜드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는 기술력과 창의력으로 다양한 주얼리를 제작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까르띠에의 정교한 기술력은 금세 소문이 퍼져 나갔고, 이로 인해 파리의 부유층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루이 프랑수아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알프레드 까르띠에(Alfred Cartier)는 가업을 이어받아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까르띠에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알프레드의 세 아들, 루이(Louis), 피에르(Pierre), 자크(Jacques)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들은 까르띠에 브랜드를 글로벌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 까르띠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특히 루이는 파리 본점에서 브랜드를 관리하며 아르데코 스타일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였고, 피에르는 뉴욕과 런던에서 까르띠에의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이로 인해 까르띠에는 유럽 왕실과 미국의 부유한 계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왕의 보석상'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7세와 까르띠에의 ‘왕관 주문’
에드워드 7세는 까르띠에를 두고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이라 칭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별명에는 흥미로운 배경이 있습니다. 1902년, 에드워드 7세는 자신의 대관식을 준비하며 무려 27개의 왕관을 까르띠에에 주문했습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까르띠에의 정교한 기술과 디자인을 신뢰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대형 주문 덕분에 까르띠에는 왕실의 공식 보석상 자리를 굳히게 되며, 이후 유럽 왕실과의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까르띠에의 보석 스캔들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까르띠에와의 인연으로도 유명합니다. 테일러는 남편 리처드 버튼으로부터 다양한 까르띠에 보석을 선물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카르티에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69.42캐럿의 다이아몬드 반지입니다. 리처드 버튼은 이 다이아몬드를 놓고 당시 경쟁자였던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치열한 경매 전쟁을 벌였는데, 결국 버튼이 승리해 엘리자베스에게 이 화려한 다이아몬드를 선물했습니다. 이후 테일러는 이 보석을 매우 아꼈고, 그녀의 우아함과 화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까르띠에의 ‘블루 다이아몬드’ 전설
마지막으로, 까르띠에와 관련된 가장 신비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블루 다이아몬드의 전설입니다. 까르띠에는 1910년대, 그 유명한 ‘호프 다이아몬드’를 소유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블루 다이아몬드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주인을 거쳤고, 소유자들에게 불운을 가져다준다는 미신이 있었습니다. 까르띠에는 이 다이아몬드를 당시 뉴욕의 사업가였던 에벌린 월시 맥린에게 판매했고, 이후 이 다이아몬드가 그녀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도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뉴욕 5번가의 건물과 진주목걸이의 이야기
까르띠에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는 뉴욕의 5th Avenue(5번가) 건물과 진주목걸이를 교환한 일화예요. 1917년, 당시 뉴욕에서는 가장 고급스러운 지역으로 꼽히던 5번가에 까르띠에 매장을 열고자 했던 루이 까르띠에. 그는 부유한 철도 재벌인 모튼 플랜트(Morton Plant)의 저택을 눈여겨보게 되었죠.
하지만 모튼 플랜트는 자신의 저택을 팔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그때, 까르띠에가 제안한 것은 무려 진주목걸이였답니다! 당시 진주는 지금의 다이아몬드처럼 가장 귀하고 고급스러운 보석으로 여겨졌어요. 까르띠에는 1백만 달러에 달하는 진주목걸이와 플랜트의 저택을 교환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고, 모튼 플랜트는 이를 승낙하게 되었답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주얼리 업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어요.
오늘날 까르띠에는 스위스 리치몬드 그룹의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계와 주얼리뿐만 아니라 가죽 제품, 향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며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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