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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내면 깊숙한 곳을 울리는 감정의 언어를 전달하다

Celine Kang 2025. 8. 3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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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미술계에서 꽤 유명하다. 단순히 커다란 캔버스에 두세 개의 색 덩어리가 배치된 그림이 왜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깊이 울렸을까? 화려한 기법도, 복잡한 형태도 없는 그의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 의문 속에 로스코의 예술이 품고 있는 비밀과 매력이 숨어 있다.

 

마크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 제국 드빈스크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대인 박해가 심했던 환경에서 어린 로스코는 열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이주했다. 그는 예일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2년 만에 중퇴하고 뉴욕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예술에 뛰어들었다. 정규 미술 교육보다 문학과 철학, 연극, 도시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그의 사유와 예술 세계를 키워낸 토양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미술가이자 철학자, 그리고 인간 감정의 탐구자로 정의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Orange and Yellow〉(1956)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두세 개의 색면이 부드럽게 번지듯 겹쳐져 있다. 색과 색 사이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고, 보는 이가 가까이 다가설수록 미묘하게 떨리며 감정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단순한 추상화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감정을 건드리는 심리적 공간으로 작동했다. 또 다른 명작 〈Seagram Murals〉 시리즈는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을 위해 제작되었지만, 로스코는 완성 후 "이런 사치스러운 공간에 걸 수 없다"며 전시를 거부하고 런던 테이트 모던에 기증했다. 상업적 성공보다 작품의 본질적 울림을 중시한 그의 태도는 오늘날까지 예술가의 양심을 상징하는 사례로 회자된다.


감정의 성당을 짓다

로스코는 흔히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불리지만, 그는 그 명칭을 스스로 거부했다. 그는 "내 작품은 인간의 감정을 위한 것이지, 형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림을 감정의 성당처럼 만들고자 했다. 실제로 그의 전시장은 조명을 낮게 설치하고 벽면에 거대한 색면화를 걸어 마치 현대의 성당에 들어온 듯한 몰입을 유도했다. 그는 사람들이 그림 앞에서 고독, 비극, 경외 같은 감정을 스스로 마주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린 관람객들이 많았던 것이다.


색으로 말하는 철학자

로스코의 그림에서 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다. 그는 수십 겹의 얇은 색층을 덧발라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깊이를 만들었고, 이 색들은 서로 경계 없이 섞이며 심리적 울림을 전했다. 그는 색을 통해 인간의 영혼과 직결되는 보편적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고, 그 감정은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영역에 닿아 있었다. 그래서 그의 색면화 앞에서는 누구나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내며 작품과 대화하게 된다.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는 예술

흥미로운 점은 로스코가 작품 설명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관람객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그림과 마주하길 원했고, 그 속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경험하길 바랐다. 실제로 그는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본다면, 그건 내가 내 의도를 전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미술관을 넘어 명상과 영성의 공간으로 확장되었고, 휴스턴에 세워진 로스코 채플은 지금도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나 와서 고요히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현대적 성소로 기능하고 있다.


마크 로스코의 예술은 단순한 색의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울리는 감정의 언어이자, 고독과 죽음, 황홀과 구원의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는 시각적 철학이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서는 설명 대신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 속에서 관람객들은 스스로의 감정과 대면하게 된다. 로스코는 평생 예술이 인간을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그 믿음을 증명하듯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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